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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남시장애인연합회의 상생위해 힘쓸 터’
이필재 성남시장애인연합회 회장
운영 열악한 단체 많아 자체 수익사업 필요
성남시장애인회관 건립·재활작업장 운영목표
故 이수탁 신체장애인복지회장 유언 실천 노력
2019년 03월 15일 (금) 오혜정 기자 ggwelfare@naver.com

   

지난 2018년 12월 이필재 경기도신체장애인협회 성남시지부장이 성남시장애인연합회의 새 수장이 되었다. 3월 중 취임식을 하는 이필재 연합회장을 성남시장애인연합회 사무실에서 만났다. 어느새 손주를 본 할아버지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 이 회장의 젊은 시절과 장애를 입은 후 휠체어댄스스포츠 선수로 활약하는 등 제 2의 인생의 여정을 통해 삶의 희망을 안겨주는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연합회장이 되신 것을 축하드린다. 인사말씀 부탁드린다.
=故 이수탁 회장님께서 생전에 항상 하신 말씀이 “우리가 이 세상을 살면 얼마나 살겠나. 같이 살아가는 세상이다. 아프면 같이 아파해주고 부당한일을 당하면 같이 대응해주고 같이 사는 것”이라는 말씀을 늘 하셔서 저도 그 뜻이 맞는다고 생각한다. 나만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라는 테두리를 함께 만들어가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장애인 단체 중 회장님의 나이가 가장 어린데 연합회장으로 추대 된 것을 보면 남다른 리더십이 있는 것 같다.
=단체장님들께서 잘 해보라고 믿어주셨고 그동안 격의 없이 편하게 잘 지내서 그런 것 같다. 그동안 같이 가자라는 마음으로 일하다보니, 단체들 간의 갈등을 중재하는 역할을 하게 되었는데 이번 기회를 통해 젊으니까 열심히 더 잘하라는 의미로 맡겨주신 것 같다.  

올해 특별한 계획이 있다면?
=이번에 장애인부모회가 시에서 승인을 받아 장애인연합회에 들어올 수 있게 되었다. 단체가 7개가 되었는데 각 단체마다 운영이 너무 열악하다. 행사를 개최하면 10%씩 자부담을 내야하는데 그것조차도 없어서 일 년에 행사 한번 못하니 후원을 받아야하는데 후원 받기가 정말 힘들다. 그렇다고 단체장이 자부담으로 다 하는 것도 힘들다. 그래서 수익사업이 있어야 하는데  예전에 장애인재활작업장 운영을 하다가 불미스러운 일로 인해 못하게 되어서 투명하게 잘해오던 단체마저 피해를 입었다. 그러나 이제는 단체마다 운영을 투명하게 잘하고 있으니 시에서도 매뉴얼을 정해서 믿고 맡겨주셨으면 한다. 은수미 시장님께서 물꼬를 터주시길 희망해본다. 이에 앞서 가장 중요한 것은 7개 단체가 한마음이 되는 것이 가장 중요한 것 같다. 서로의 장애유형의 특성을 인정해주고 똘똘 뭉쳐서 함께 상생하는 방법을 모색해 나가는 것이 올해의 목표다.

언제 장애를 입으셨는지.
=아직도 사고 당시가 생생하다. 1993년도에 영동고속도로에서 교통사고로 낭떠러지에 떨어졌다. 안전벨트를 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차량 밖으로 튕겨나갔는데 다행히 목숨은 건졌다.  새 차를 구입한지 얼마 안 되었는데 사고로 차는 폐차되고 저는 흉추 8, 9번을 다치면서 하반신이 마비되었다. 수술도 힘들었지만, 신경이 손상돼 고통을 참는 것이 가장 힘들었다. 지금도 쑤시고 결릴 때 가장 강한 진통제를 먹지만, 그땐 이 시간이 끝나기를 하면서 그냥 버텼다.

회장님과 가족 모두 절망 속에 빠졌을 것 같다.
=사고 당시 제 아내는 임신 9개월이었다. 출산을 앞두고 얼마나 무서웠겠는가. 아기도 아기지만, 저를 옆에서 지켜보며, 간호하다 아기를 낳고도 제대로 산후 조리도 못했다. 그렇게 딸이 세상에 태어나고 3년을 버티다 아내와 헤어지고 딸을 키우며, 하루하루를 바쁘게 살았다. 복지관에 가서 저는 컴퓨터를 배우고, 딸은 수영을 하고 또 다음 프로그램을 배우며, 최대한 잡생각을 할 틈 없이 집을 나섰다. 딸애를 내 무릎에 앉히고 휠체어를 함께 타며, 세상에 나와 사람들과 함께 했다. 그래서인지 저희 딸은 저를 부끄러워하지 않고 당당하게 우리 아빠라며, 중학교 입학식에도 꼭 저보고 학교에 와서 입학을 축하해주라고 할 정도로 건강하게 잘 자라주었다. 어느덧 그 딸이 반려자를 만나 결혼해 손주를 안겨주었다. 딸이 결혼하고 한참동안 허전해서 힘들었지만 이수탁 회장님을 대신해 협회의 모든 일을 맡고 보니, 이제는 딸이 저보고 서운하다 할 정도로 바쁜 일상을 보내고 있다.

척수가 손상되는 고통 속에서 어떻게 버텼는가.
=수술로 핀을 고정한 곳이 염증이 나서 일주일 후에 다시 수술하기를 몇 차례 반복하는 동안 고통이 너무 심해 그냥 다 포기하고 싶었다. 그러다 시간이 흐르면서 수술한 곳이 회복되니 이제는 침대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마음이 생겼다. 집 밖으로 나가고 싶은데 선뜻 용기가 나지 않았다. 그 당시만 하더라도 장애인식개선이 전무할 때다. 어쨌든 아이를 위해 나들이도 가야하니까 아이를 무릎에 앉히고 같이 휠체어를 타고 무조건 세상에 나왔다. 내 힘 보다는 자식을 위해서 이것도 못할까하는 마음이 컸다. 지금 생각해보면 우리 아이가 없었다면 내가 살아갈 희망을 가졌을까? 우리 아이가 있었기 때문에 내가 살 수 있었다. 우리 아이 역시 얼마나 힘들었을 지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미어진다.

장애인휠체어댄스스포츠 선수로 활동도 하셨다.
=성남에 살다가 아내와 이혼하고 아이를 위해 청주로 이사를 가서 아이가 초등학교 4학년 무렵 다시 성남으로 이사를 왔다. 2008년 무렵 문진호 장애인휠체어댄스스포츠 선수가 같이 휠체어댄스를 해보자하고 권했다. 3년 동안 열심히 했다. 그런데 댄스용 휠체어도 고가지만, 대회 참가를 자비로 하면서 지속적으로 선수생활을 하는 게 쉽지 않았다. 도저히 안 되겠다 생각이 들어 2010년 장애인아시아경기대회에 출전을 마지막으로 그만두기로 마음먹었다. 저도 그간 성적이 좋은 편이어서 함께 했던 진호형이나 주변 분들이 많이 만류도 했지만, 그 당시 제가 머리가 길었는데 긴 머리를 자른 후 저의 의지를 확고하게 보여주면서 그만 두었다.
그 후 신체장애인복지회가 그 당시 서현동에 있었는데 이수탁 회장님께서 분당갑 지역의 분회장을 맡아서 복지회를 키워보자고 제안을 하셨다. 그때는 회원이 10여명에 불과했는데, 이수탁 회장님도 그렇고 저도 그렇고 뭔가에 딱 꽂혀버리면 열과 성을 다한다. 열심히 하다 보니 한 달 새 회원이 50명이 되고, 100명이 되면서 활성화를 시켰다.

그 열성이 지금의 신체장애인복지회가 된 원천이 된 것 같다.
=그렇다. 이수탁 회장님이 헌신 덕에 신체장애인복지회가 이만큼 성장할 수 있었다.
은수미 시장님께서 시장 후보 때 장애인정책 9가지 공약을 건의한 것도 이수탁 회장님께서 돌아가시기 며칠 전에 얼른 작성하라고 지시를 하셔서 밤새서 작성해서 전해드렸더니, 은수미 시장님께서 당선되자마자 온누리홀에 계단과 휠체어리프트를 설치해주셨고 현재 6가지 공약을 이루어 주셨다.
장애인복지회관 건립도 그 중 한가지인데 이뤄주실 것을 믿는다. 이처럼, 취임 1년도 안되어서 장애인정책 공약 중 반 이상이 이뤄진다는 것이 쉽지 않은데 그만큼 우리 이수탁 회장님의 그 뜻을 소홀히 하지 않으신 것이 또 감사하고 옆에서 처음부터 지켜봐 온 저로써는 정말 진심으로 내일처럼 가슴으로 도와주신 분들께 정말 감사드린다.

회장을 맡으신 후 이수탁 회장님이 더 그리울 것 같다.
=저는 이수탁 회장님 추모관에 자주 간다. 회장 자리에 앉아보니 그동안 외로웠겠구나하는 생각이 많이 든다. 저는 옆에서 나름 도와준다고 많이 애썼는데 제 역할하고 회장님의 역할이 전혀 달랐다. 이수탁 회장님이 하나라도 더 일을 하시려고 했었던 그 마음이 이해되고 그래서 더 보러가는 것 같다.

경기복지신문 독자 분께 격려의 메시지 부탁드린다.
=저는 사고가 난 이후 4년이라는 공백이 있었는데, 저 같은 중도 장애인들이 공백 기간이 길지 않았으면 좋겠다. 어차피 내 모습이 건강했던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그 현실을 빨리 받아들이고 제2의 인생을 준비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장애인도 찾아보면 할 일이 많다. 비장애인 이었을 때에도 내가 찾아야지만 직장도 얻을 수 있었듯이 두드리면 방법은 있었다. 집 밖을 한 발짝 나가는 그 한 걸음의 용기가 생기기까지 두려움이 나를 사로 자로잡고 있는데 빨리 털어버리고 용기를 내면 그때부터 나를 도와주는 사람도 생긴다. 물론 집 밖을 나온다고 다 해결되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집에 있는 것 보다는 나와 비슷한 사람들이 있는 장애인단체나 복지관에 와서 서로 부대끼다보면 어우러지고 나도 성장하는 것을 느낀다. 꼭 용기를 내시길 바란다.

   


오혜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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