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시급”으로 중증장애인 돌봄 힘들어
울며 겨자 먹기로 부당수급 눈감아 주기도


지난 4월 대낮에 발생한 화재로 전신에 3도 화상을 입은 송국현(53)씨가 끝내 숨을 거두었다. 송씨는 몸도 제대로 가눌 수 없는 지적장애를 앓고 있었지만 대피를 위한 도움을 받지 못했다. 관할 지자체에 활동보조인을 신청했지만 중증이 아닌 3급이라는 이유로 거절당했기 때문이다.
장애등급제를 폐지해야 한다는 목소리는 지속적으로 나왔다. 보건복지부는 이와 같은 의견을 수렴해 내년부터 지원대상을 3급까지 확대하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송씨가 그토록 필요로 했던 활동지원제도는 여전히 문제점을 드러내고 있다. 돌보기가 어려운 중증장애인들을 보조인이 기피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현재 보조인에게는 장애 급수나 일의 경중에 관계없이 똑같은 시급을 적용하고 있다. 중증장애인은 기피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 실제로 활동보조인으로 일하고 있는 김(47·여)씨는 “같은 시급이라면 누가 중증장애인 활동보조를 하겠느냐”고 토로했다. 뇌병변 1급 장애 아들을 둔 박모(41)씨도 “같은 돈이라면 힘이 덜 드는 일을 하고 싶은 게 인지상정이겠죠”라며 쓴웃음을 지었다.
이에 대해 한상균 복지부 장애인서비스과장은 9일 “활동보조인들이 중증 장애인을 기피한다고 해서 급여를 차등화하면 장애인들 안에서 또 다른 차별을 야기할 수 있다”며 “충분한 검토가 필요한 문제”라고 말했다. 또한 안창용 안양시장애인자립센터 사업국장은 이러한 기피현상에 대해 “제공기관의 역할이 중요한 시점에 온 것은 분명하다”며, “하지만 모든 보조인과 이용자를 감독하기에는 무리가 많다. 누군가의 도움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장애인들은 자신들을 위한 제도 이용에서도 약자였다. 박모씨는 “만나자마자 일하지 않은 시간까지 일한 것처럼 해달라는 분들이 많다. 저희가 활동보조인을 구하는 게 아니라 선택받는 실정이다.”라고 호소했다. 보조인 이용자의 입장에서 그들을 붙잡아 두려면 이런 부당한 요구까지 수용해야만 하는 것이다.
지난 5월 28일에는 활동 보조금을 부정 수급한 혐의(장애인활동지원에 관한 법률위반)로 9명이 불구속되었다. 경찰에 따르면 이들은 지난해 2월부터 올해 1월까지 인천에서 총 393차례에 걸쳐 장애인 활동보조 수당을 허위로 청구해 총 1천50만원을 가로챈 것으로 드러났다.
그렇다고 보조인만을 탓할 수도 없는 실정이다. 올해 책정된 평일 활동보조 시급은 8,550원으로 25%의 중개 수수료를 떼고 나면 6,412원이 남는다. 한 달에 200시간을 일해도 들어오는 돈은 120만원에 불과하다. 보조인의 입장에서도 전혀 유익한 조건이 아니다. 게다가 활동보조인 대다수가 40대 이상의 여성인 점을 감안하면 노동 강도도 높다. 2인이 서비스를 제공할 수도 있지만 이 경우 기본시급이 25% 줄어든다.

때문에 일각에선 부정수급에 대한 유혹이 구조적인 문제라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부정수급을 적발하는 데만 집중할 것이 아니라 근본적인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고미숙 전국활동보조인노동조합 사무국장은 “현재 활동보조 지침서는 규제와 결격사유 및 의무 사항만 담고 있고, 보조인의 노동권을 보장하는 사항이 없다”며, “노동자들에게 비현실적인 지침을 개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서비스 이용 시간에 한도를 둔 것도 문제다. 송파구 장지동에 거주하는 오지석(32)씨가 호흡기 사고로 의식불명 상태에 빠져 이달 1일 생명을 잃었다. 오씨는 호흡기 없이는 5분도 숨 쉴 수 없는 근육병을 앓고 있어 24시간 활동보조가 필요했다. 그러나 어머니와 함께 산다는 이유로 추가급여를 받지 못해 하루 9시간의 서비스만 이용할 수 있었다. 자비를 들이기엔 형편이 녹록치 않았다. 비극은 활동보조인이 퇴근한 뒤 일어났다.

오씨의 어머니는 “아들과 같은 장애인들을 위해 활동지원제도를 24시간 보장해 달라”며 “다시는 우리 아들처럼 죽는 사람이 없도록 해달라”고 호소했다.
한편, 서울시 종로 서울광장에서 지난 5일 ‘장애인 활동지원제도 사각지대 피해자 故 오지석 동지 장례위원회’가 장애인장(葬)을 열고 현행 활동지원서비스의 문제점을 규탄하기도 했다. 이날 장에 참석한 최용기 서울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장은 “활동보조는 장애인의 권리다”며, “정부는 더 이상 장애인들이 죽어가지 않게 활동보조를 24시간 보장하는 책임감을 가졌으면 좋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안성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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