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막색소변성증으로 시력 잃었으나 고군분투하며 생활
미국·이탈리아 유학 석·박사 수료…훌륭한 성악가로 탄생

경기도시각장애인복지관 1층 카페에서 인터뷰중인 김정준 성악가
경기도시각장애인복지관 1층 카페에서 인터뷰중인 김정준 성악가

 

강한 의지력으로 절망을 딛고 일어서 우리 사회를 따뜻하게 해주는 인물이 있다.
김정준 바리톤은 시각장애 1급으로 경희대 음대 성악과를 졸업하고, 미국 인디애나 대학과 이탈리아 밀라노 Donizetti Academia 최고연주자 과정 디플로마를 마치고 한빛 예술단 합창단 & 중창단 지휘자를 역임했다.
지난 2014년 제10회 인천 장애인 아시안게임 개회식에서 애국가를 지휘하였고, 중국 북경에서 한중 수교 20주년 기념 음악회 초청 공연을 하는 등 다양한 지휘 및 음악 감독경력을 가지고 있다.
성악가와 지휘자로 활동하면서도 시각장애인들에게 컴퓨터 활용법을 가르치며 활발한 봉사활동을 하고 있는 그를 만나보았다. 


경기복지신문 독자분께 인사 부탁드린다.
=저는 성악가 겸 지휘자 김정준이다. 제가 그동안 살아오면서 경험하고 해결했던 것들을 시각장애인들과 나누고 삶의 목표를 설정하는데 도움이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살고 있다. 음악가로서의 내 정체성을 통해 누군가에게 삶의 원동력이 되었으면 한다.

어릴 때부터 시력에 이상이 있었는가?
=완전히 빛도 볼 수 없게 된 지 6~7년쯤 된 것 같다. 지난 2011년에 보행에 지장이 있어 삼성화재에서 안내견을 분양받았다. 제 병명은 망막색소변성증인데 아버지로부터 유전되었고 고등학교 때부터 시력이 점점 안 좋아졌다. 제 경우는 가운데 시력부터 소실되기 시작해 더 치명적이었다. 걸어 다니는 데는 지장이 없는데 처음엔 글자를 못 보거나 사람 얼굴을 못 알아봤다. 그래서 책을 빨리 읽지 못하고 초점을 다른 쪽으로 맞춰서 옆으로 봐야 하는 상황이었다. 안경 가운데에 흰색 줄을 만들어놓고 주변으로 본다고 생각하면 된다. 

음악을 하게 된 계기가 있는가?
=어린 시절 꿈은 물리학자였으나 점차 시야가 좁아지는 증세가 나타나기 시작하면서 음악을 해야겠다고 결심했다. 보통 음악 하는 분들은 주변에서 재능이 있으니 해보라고 권하면서 시작하는데 저는 살아오면서 노래를 못한다는 얘기를 들어본 적은 없었고 음대 입시에서 곡을 다 외워서 하면 음악을 해 오던 분들하고 경쟁은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물론 해보니 그런 건 아니었다(웃음). 당시에는 장애인 특례 입학이라든가 장애인 지원 제도가 없었기 때문에 신체검사로 이공계는 당연히 못 갔고 교육학과도 공무원 임용법에 교정시력 0.3 이하는 안 되기 때문에 대학 입시 원서에 아예 입학 불허로 명시되어 있었다. 맹학교를 다녔다면 또 인생이 어떻게 달라졌을지 모르겠다.
 

이음개관식에서 애국가를 제창중인 김정준 성악가

유학 생활은 어땠나?
=경희대를 졸업하고 미국으로 갔다. 영어를 공부하고 미국에 갔더니 한국 대학에는 시각장애인들이 공과대학을 갈 수 없었는데 미국은 가능했다. 그래서 컴퓨터 공학은 부전공으로 공부하게 되었다. 미국에서 성악으로는 석사와 박사과정을 수료하고 이탈리아로 가서 최고 연주자 과정 아카데미 코스를 공부했다. 다행히 부모님께서 지원해 주실 수 있는 상황이라 음악 공부를 할 수 있었다. 

미국에서 공부할 때 장애인에 대한 배려가 있었는지.
=미국 인디애나에서 공부했는데 장애인 복지가 잘 되어 있는데 제가 어떤 혜택을 받을 수 있는지 잘 몰랐다. 학교에서는 시험시간을 연장해 주는 정도의 배려가 있었던 것 같다. 다 알아서 해주는 것이 아니라 제가 필요한 것들을 요구해야 한다. 선천적 장애인들은 다른 장애인들이 앞서 해 온 것들을 따라가면 되니 어려워도 견딜만한데 중도장애인은 비장애인으로 살아오다가 장애인이 되면서 부딪히는 어려움들을 해결하며 개척해 나가야 한다. 한국에서는 특수학교에 대한 정보가 없어 일반 학교를 다니고 외국에서 긴 세월을 보낸 탓에 저는 늘 비장애인들과 어울리는 시간이 많았다. 이탈리아에서 유학할 때는 동기들이 많이 도와줬다.

공부를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와서 힘든 점이 많았을 것 같다.
=2009년 여름 방학에 미국에서 한국으로 잠깐 들어왔는데 개인적인 문제들로 미국으로 못 들어가게 됐다. 이때 복지관에 처음 방문해 구직도 해보고 장애인고용공단에도 연락해보고 학교에도 연락을 해 놓은 상태였다. 그 무렵 점자를 처음 배웠는데 복지관에서 여러 가지 상황을 고려해 구직 원서를 내줬는데 파주 영어마을에서 면접을 보러 오라고 했다. 영어로 면접을 보는데 제가 영어는 좀 잘했다. 교장 선생님과 30분 면접을 보고 며칠 후 인사부에서 전화가 왔는데 자기네 부서에서는 통과를 시켰는데 사장이 최종 승인을 안 했다고 알려주었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시각장애인이라 안 뽑았다고 하더라. 미국도 장애인 취업이 쉽지는 않은데 한국이라고 다를 게 없다고 생각하고 말았다. 그 후 한빛예술단에 이력서를 내고 합격해 7년 정도 근무했다.

그간 다양한 무대에서 연주를 해오셨을텐데 소개 부탁드린다.
=2006년, 2007년도에 독창회 (Indiana University Auer Hall)를 시작으로 2008 년도BMCI(Beautiful Mind Charity Indiana) 자선음악회 (Bloomington), 2008 Asia Culture Festival 초청연주 Indianapolis, 2008 미주기아대책기구 미주지역 순회음악회를 했으며, 2009년 Opera on Tap 연주 (Bloomington), 2010년 ‘낭만의 봄’ 연주회 기획 및 연주, 2010년 세계재난구호기구 자선음악회 특별출연, 2010 L A 한인축제 초청공연, 강남구민회관, 양천예술회관, 관악구 문화관, 소월 아트홀, 국회 도서관 강당, 서대문구 문화예술회관 등 전국 각지에서 공연을 펼쳐왔다. 2014년 제10회 인천 장애인 아시안게임 개회식에서 애국가를 지휘하였고, 중국 북경에서 한중 수교 20주년 기념 음악회 초청 공연을 하는 등 다양한 지휘 및 음악 감독경력을 가지고 있다. 그 외에 수상경력은 Homer E. Marsh Award 수상, Russell R. and Dorothy Judd Award 수상, Dean’s Graduate Grant from IU Jacobs School of Music, 現 한빛예술단 지도강사 및 음악전공과 출강, ShineNjoy Vocal Ensemble 음악감독을 맡았다.

2014년도에 인천에서 개최된 아시안 패러게임 개회식에서 애국가 지휘를 하셨는데.
=섭외가 일주일 전에 왔다. 원래 제가 아닌데 지휘자가 필요한 상황이었고 지휘를 해본 사람이 저밖에 없었다. 한빛예술단에서 지휘자 및 공연부장으로 있었지만 맹학교도 안 다녔고, 장애인계에 특별한 연줄도 없는 상황에서 기회가 찾아왔다. 

음악은 삶과도 같을 것 같다.
=음악을 빼놓고선 삶을 말씀드리기 어려울 만큼 저는 목숨 걸고 음악을 공부했다. 즐겁게 음악을 해야 되는데 목숨을 걸고 했다. 전쟁은 이기면 살고, 지면 죽거나 노예가 되는데 마치 전쟁처럼 제 음악이 굉장히 전투적이었다. 2019년도에 한빛예술단을 그만두면서 그 전쟁처럼 여기던 음악도 제 삶의 일부라는 생각이 들어서 지금은 저의 음악이 다른 사람들한테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한때 장애인으로 살아왔고, 앞으로도 이렇게 살아가야 하는데 목적지가 없는 배 위에 있는 것 같은 상실감이 들어 한땐 나쁜 생각을 깊게 한 일도 있다. 
그러다 알베르 까뮈의 책을 접하고 부조리에 대한 해석, 자살에 대한 이야기를 통해 자살에 대한 생각을 멈출 수 있게 되었다. 
 

2011년 삼성화재에서 안내견을 분양받은 김정준 성악가(왼쪽에서 두번째)
2011년 삼성화재에서 안내견을 분양받은 김정준 성악가(왼쪽에서 두번째)

 

다음 목표가 있을 것 같다.
=그동안 비장애인들과 함께 공연하고 경쟁을 많이 했지만 장애가 심해지면서 장애인이 되었다는 것을 실감하고 점차 마음도 장애인들에게 향하게 되었다. 이제는 다른 이들을 위해 할 수 있는 일들을 찾고픈 생각이 가득하다. 비장애쪽에 있다가 장애인 쪽으로 한 걸음 다가온 느낌이랄까? 그래서 장애인 인식개선 문제에 관심이 많다. 장애 인식개선 문제는 비장애인들만을 대상으로 할 것이 아니라 시각, 지체, 청각 등 장애유형별로 서로에 대한 이해도 많이 부족한 실정이기에 서로 이해하고 교감할 수 있는 분위기가 될 수 있도록 연구하고 싶다. 그리고 성악가로서도 ‘예술가로서의 성악’을 해나갈 것이며 장애인식 개선 연구와 더불어 전문서적 번역이나 이론서 저술을 생각하고 있다.

독자들에게 듣기 좋은 곡 추천 부탁드린다.
=요즘 한국 가곡이 아름답고 좋은 곡들이 많이 만들어지고 불리고 있다. 얼마 전에 연주회가 있었는데 한국 가곡을 불러달라고 해서 이것저것 준비하다가 연주회 때 부를 만한 곡을 선정했다. ‘마중’이라는 곡인데 불러드릴까요?(실제로 즉석에서 마중을 불러주었다.)

오혜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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