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단체총연합회 신축 주차타워에 입성…단독회관 건립 바램
도내 장애인단체총연합회 최초 구성…청소용역 장애인연합회 전담
장애인부모회 주간보호센터, 숙원사업이던 넓은 곳으로 이전 보람

이남숙 군포시장애인단체총연합회 회장은 지난해 3월 보궐선거에서 만장일치로 회장에 추대되어 오는 3월이면 임기가 끝난다. 장애인부모회 회장도 3월이면 임기가 만료되어 회원으로 돌아가게 된다. 장애인단체총연합회장으로 활동한 1년, 짧지만은 않았던 그 여정에 대해 들어보았다. 

-군포시장애인단체총연합회장으로 활동하신 소감 한 말씀 부탁드린다.
=지난 1년 동안 참 정신이 없었다. 굵직하게는 장애인센터가 개관하고 주차타워에 장애인단체총연합회가 입주하면서 연합회 사무국장과 직원들, 각 장애인단체가 화합 속에서 입주를 마쳤다. 제 역할은 여기까지다. 후임으로 오시는 연합회장님께서 잘 이어서 활동해 나가시리라 믿는다. 총연합회 사무국장도 제가 회장이 되면서 영입한 인재인데 일 처리가 깔끔하고 함께 일하는 직원들을 파트너로 생각하고 열심히 일해주어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군포시장애인단체연합회에 대해 소개 부탁드린다.
=경기도권에서 장애인단체총연합회 설립은 군포시가 최초인 것으로 알고 있다. 연합회 소속 8개의 단체(교통, 시각, 복지회, 정보화, 농아인, 신체, 부모회, 지체)가 뭉칠 때는 뭉치고 적극적으로 협조하여 이번 주차타워 입주와 같은 큰일도 일사천리로 잘 진행할 수 있었다. 또 군포시에서는 청소용역을 장애인단체총연합회에 위탁해 장애인 일자리 창출에 앞장서고 있다. 이는 우리 장애인단체가 자립할 수 있는 토대를 구축해주는 것으로 이익은 각 단체가 나누도록 해 복지 사업에도 도움이 되어 군포시에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다. 

지난 12월 장애인센터도 개관 하는 등 군포시가 적극 지원하는 것 같다. 
=기존의 군포시 장애인센터는 산본동의 한 빌딩에 사무실만 있었다. 새로 이전한 군포시 장애인센터에는 사무실, 다목적실, 체력단련실, 정보화실, 프로그램실, 보장구수리센터, 점자·안마실, 군포시장애인자립센터, 군포시가족지원센터 등이 들어섰다. 
체력단련실 같은 경우 8개 단체가 순번을 정해 장애의 특성에 맞는 운동기구를 놓고 사용하는 운영 방식이다. 아직 겨울이라 이용 빈도가 높지 않으나 3월이 되면 각 단체에서 계획한 프로그램들이 진행될 예정이다. 
이처럼 장애인단체가 연합회로 하나가 되면서 군포시에서도 한 창구로 소통이 되니 업무 진행이나 계획 수립도 원활하게 생각하는 것 같다. 시에서도 우리의 목소리를 집중해서 들어주니 고맙게 생각한다. 앞으로 바램이라면 단독회관을 건립하면 좋겠다는 것이다.
 

 

-장애인부모회 회장으로 활동하고 계시는데 그간의 보람과 아쉬움이 있으시다면.
=코로나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제가 회장으로 10년을 있었다. 회원들의 전폭적인 지지가 없었으면 긴 시간 동안 회장직을 어떻게 할 수 있었겠는가. 군포시장애인부모회의 회원들이 서로 다툼없이 부드럽게 회의를 통해서 단체를 이끌어 나가는 것은 여러 모습으로 좋은 영향을 끼치는 것 같아 감사하게 생각한다. 
발달장애 자녀들이 밖으로 나가는 것을 좋아한다. 지금은 활동 보조인의 도움을 받아 부모님들도 덜 힘들긴 한데 성인 발달장애인들은 이미 신체가 부모보다 더 크고 힘도 좋으니 감당하기 힘든 부분이 있다. 
저도 아들이 39살인데 둘이 외출하는 건 힘들다. 그러나 활동 보조인 제도가 생기면서 부모들이 매우 편해졌다. 1년에 한 번씩 대대적으로 여름 캠프를 진행하는데 수영장이 있는 캠핑장을 섭외해서 온종일 물놀이를 즐겨도 되고 부모들도 삼삼오오 이야기꽃을 피우고 식사를 함께하며 보내는 시간이 너무 행복하다. 평소에는 이런 시간을 갖기가 쉽지 않다. 그런데도 저는 우리 아들을 데려간 적이 거의 없다. 회장으로서 행사를 총괄하고 참가자들의 안전을 지켜야 한다는 책임감으로 회장으로 있었던 10년 동안 두 번 정도 아들과 행사에 함께 했던 것 같다. 
부모회는 장애 당사자들에 대한 사업도 하지만 부모에 대한 사업도 한다. 예를 들면 그림이나 볼링 등 당사자들이 체험하는 것인데 지난해 진행한 네일아트 수업은 어머니들에게 정말 인기가 많았던 프로그램이었다. 
그리고 ‘우리 주간보호센터’가 우리 아이 어렸을 때 설립이 된 곳인데 우리 부모회 회원들이 갹출해서 20평 정도 공간을 마련했다. 20평이지만 우리만의 공간이 생긴 것이 얼마나 좋았는지 여기서 바자회를 개최해 김밥 등을 팔아 조금씩 돈을 모았다. 
자녀들의 덩치가 커서 13~14명을 받을 수 있는데 9명밖에 못 받았다. 저의 숙원사업이 넓은 평수로 이전을 하는 것이었는데 그 꿈이 곧 이뤄진다. 당동에 54평으로 이사를 하게 되었다. 이런 사업들이 제가 임기가 끝나는 시점에 다 이뤄지니 감개무량하다.
 

 

-단체장으로 활동하는 데 가족들의 지원이 절대적이었을 것 같다. 
=가족으로 한없이 마음이 넓은 남편과 두 아들이 있다. 늘 내 몸과 마음 같은 우리 큰아들이 발달장애 2급으로 다 큰 성인인데도 여전히 아이 같다. 큰아들은 지금 39세인데 태어나서 지적장애였었는데 중간에 자폐성 성향이 보였다. 
사실 발달장애 자녀를 키우는 부모회의 엄마들이 조금씩 우울증이 있다. 그러니까 치료하느냐 안 하느냐의 차이인데 저는 치료 중이다. 거의 20년째 치료하는 중인데 누구한테도 떳떳이 얘기하고 회원들이 우울증이 보이면 제가 먼저 저의 얘기를 오픈하고 상담받아보라고 권한다. 요즘엔 정신과에 가는 인식이 장애인 인식보다 더 넓어졌다고 생각한다. 괜찮아. 정신 차리자. 내가 모르는 사이 내 마음은 망가지는데 이 상황이 수습이 안 된다. 그래서 치료받은 엄마들도 많아서 또 감사하다. 
저도 치료받을 때 처음에 그랬다. 정신과를 내가 왜 가? 이런 생각이었는데 제가 좋아지니까 아들도 받아들여지게 되고 마음도 많이 안정되니까 집안이 평온해지는 거다. 제가 쭈그리고 있으니 남편도 피는 얼굴이 아니었다. 
설상가상으로 큰아들이 4년 전에 설암 3기를 판정받았다. 지난 몇 년들이 주마등처럼 스칠 때면 그 시간을 어떻게 견뎠는지 꿈만 같다. 이제 몇 개월만 더 있으면 5년이다. 재발하지 않고 지나가길 기도한다. 올해 9월 지나야 완치 판정이 되는데 3기면은 거의 힘들다고 얘기했는데 의사가 지금 발현이 안 되고 있다고 한다. 암 부위를 잘라내고 볼살로 피부이식을 한 후 방사선치료를 30회 받아야 하는데 입을 최대한 벌린 상태로 10분 이상 방사선을 쬐어야 한다. 하지만 발달장애가 있으니 그 10분을 견디지 못해 결국 방사선치료를 포기하고 하나님께 맡기는 수밖에 없었다. 제가 할 수 있는 건 식이요법으로 음식을 해주는 것이 전부였다. 믹서기가 있는데도 제가 손으로 재료를 다 다져서 하는 바람에 무리해서 오른손 팔목에 수술도 했었다. 

-설암은 어떻게 발견되었나?
=늦게 발견했다. 아들 몸무게가 90kg인데 식욕이 좋다. 그래서 항상 다이어트를 해야 하는데 항상 아들에게 그만 먹으라고 말하면 아들이 안 먹다가 내가 없을 때는 음식을 막 뒤져 먹기도 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살이 좀 빠지는 게 보여서 35년 만에 다이어트에 성공한 건가 했는데 아들이 다니던 재활작업장에 출근도 안 하고 아침에 못 일어나고 잠만 잤다. 
그러다가 치과 정기검진을 갔었는데 그때 의사 선생님이 큰 병원에 가보라고 했다. 그래서 알게 되었는데 그 이후부터는 시간이 해결해 주더라. “언제가 또 만약 암이 생기면 어떻게 할까?”하는 이야기를 남편하고 하면서 가끔 운다. 받아들이기로 준비가 돼 있다고 마음먹으면서도 또 겁이 난다. 40이 다 돼가는 성인이지만 아이다. 그래서 그런지 다른 장애인들을 바라볼 때도 엄마 같은 마음으로 보게 되는 것 같다. 

-인생의 본보기나 좌우명이 있다면.
=제 생활신조가 ‘오늘 하루 더 성실히 살자 ’이다. 어제도 생각하지 말고 내일도 생각하지 말고 오늘 하루 충실하게 오늘의 할 일을 성의껏 다 하자. 인정하기 싫은 그런 것 때문에 하루하루가 지나면 내 아들이 좋아질까? 중도 장애 있으신 분도 아마 그런 게 있을 거다. 그런데 거기에 거는 희망이 커지면 커질수록 상실감이 너무 커서 그냥 오늘 하루 후회 없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된 것 같다. 

-마지막으로 군포시 장애인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린다. 
=장애를 이겨내라 극복해라 이런 말은 상황을 더욱 힘들게 한다고 생각한다. 국어사전에서는 신체 기관이 본래의 제 기능을 하지 못하거나 정신 능력에 결함이 있는 상태를 장애라고 정의한다. 한 장애인의 생애주기를 복지사회에 대입해봤을 때 갈 길이 멀다. 장애인과 그 가족을 위한 복지 메커니즘은 어디 있을까? 장애인들에게 꼭 하고 싶은 말은 장애를 이겨내려고 하지 말고 내가 불편하지 않도록 건의해야 한다는 것이다. 장애는 극복의 문제가 아니다. 비장애인이 사는 것만큼 장애인이 살아갈 수 있도록 사회가 나아지면 되지 않는가. 앞으로도 저는 특히 가족 중 장애인이 있다면 불편하지 않도록 이 사회에서 인간의 기본권을 누릴 수 있도록 애쓸 것이다. 

오혜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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