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싱사로 일하다 4급 지체장애인이 된 후 장애인에 관심
새벽 6시부터 50여 가정 순회하며 장애인들 안부 확인
6년 전 유방암 이겨내어 말기암 환자 내 일처럼 돌봐

 

아침 일찍 집을 나서 뛸 듯이 걸어 다니며 장애인 50여 가정을 순회하고 안부를 확인하는 일은 만만치 않은 일이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장애인이 되고 보니 주변의 장애인들이 눈에 들어왔고 그냥 지나칠 수 없어 돕기 시작한 일이 비영리법인 경기도장애인희망나눔협회까지 만들었다. 16년 동안 운영해온 박영애 경기도장애인희망나눔협회 회장이 그 주인공으로 부천시장애인한마음연합회 회장을 역임하고 있는 박 회장을 만나 그간의 소회와 앞으로의 포부를 들어보았다.

장애인 협회를 하게 된 동기는?
=제 직업은 미싱사였는데 16년 전 허리디스크로 4급 지체장애인이 되었다. 그 뒤로 장애인계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주변의 장애인들을 도우면서 좀 더 체계적으로 저의 신념대로 운영하고 싶은 생각이 들어 비영리법인을 만들어 지금까지 운영하고 있다.

협회의 규모는 어떻게 되는가?
=부천을 중앙법인으로 거점을 두어 운영하고 있으며 5개 도시(성남, 화성, 하남, 안양, 평택 등)에 지회를 두고 있다. 부천에는 310명의 장애인들이 회원으로 등록되어 있으며 결속력이 대단하여 잘 모이고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부천시한마음장애인총연합회 회장으로도 역임하고 계시는데
=그렇다. 부천시에는 기존의 큰 단체들 시각, 농아, 지체협회 등이 주축이 되고 소속되어 있는 부천시장애인총연합회가 있는데 여기는 입회비도 많고 매달 회비도 내야 되어서, 가입비도 없고 월회비도 없이 순수한 단체끼리  모여 서로가 도와주고 힘이 되어 주자는 뜻을 모아 현재 산재장애인복지진흥회, 곰두리, 열린정보화협회, 경기도장애인희망나눔협회, 국제문화협회, 장애인정보화협회 등 5개 단체가 모여 창립하였는데 지난해 가을부터 부천시지체장애인협회가 부천시장애인총연합회 탈퇴 이후 부천시한마음장애인총연합회에 가입하여 열심히 활동하고 있다.
특히, 4월 20일 장애인의 날 기념식 행사는 다 같이 모여 함께 하고 있다. 금년에도 부천역에 있는 채림웨딩홀을 500명 규모로 성황리에 개최했다. 이날 행사비는 제가 절반을 내고 나머지는 각 협회에서 형편대로 내는 찬조금과 기부금으로 충당했다. 장애인들의 생일인 이날만큼은 맥주나 소주 등 술을 마시는 것을 허용하여 마음껏 마시고 즐기게 한다. 그러나 아직까지  큰 사고나 불상사 없이 잘 치르고 있다. 장애인단체총연합회에는 시에서 2천200만원의 지원금을 주어 시장님과 의장님 등 지역인사가 대거 참석하는 큰 행사를 치르고 있는데 우리는 지금 수년째 순수 100% 자부담으로 하고 있다. 앞으로 시에서 우리 단체에도 지원금을 주시면 좋겠다.

희망나눔에서는 장애인들을 위해 어떤 사업을 하고 있는가?
=협회 사무실이 실평수 40평이 된다. 15평 정도는 컴퓨터 교육장을 꾸며 장애인들에게 컴퓨터를 가르치고 있으며, 20평은 장애인들의 쉼터와 교제의 공간으로 활용하고 있다. 매일 3~40명의 장애인들이 무료급식을 하고 있으며, 운동도 하고, 바둑도 두고, 노래연습기계가 있어 노래도 부르면서 힐링을 하고 있다. 특히 독거노인 및 독거장애인을 아침저녁으로 방문하여 안녕하신지 살펴보고, 민원이 있으면 관계 부처를 다니며 해결하고, 병원에 가야할 때는 동행하여 불편함이 없도록 도와주고 있다. 그러다보니 차를 운행할 수 없어서 뛰어 다닌다고 하면 좋을 것 같다. 덕분에 건강해진 것 같아 감사하게 생각한다. 특히 말기암 환자들을 도와주는데 병원비나 생계비가 부족한 사람에게는 기부활동을 통해 들어오는 돈으로 도와주고 있다.
한번은 배우 채시라씨와 한 팀이 되어 전화 멘토링을 함으로써 300만원을 기부받아 말기암환자를 도와준 적도 있다. 저는 저녁에 집에 들어갈 때는 항상 빈 몸이다. 취직을 시켜주고, 이런저런 도움을 준 사람들이 고맙다고 주는 것들은 전부 다른 사람을 위해 나눠준다. 돈이 많다고, 가진 것이 많아야 행복한 것이 아니다. 나눠주고 도와주며, 함께하면서 저에게 기쁨이 넘치고 행복감에 만족스럽다. 하루에 한 끼만 먹어도 마음이 편안하고 즐거우며 건강하다. 그래서 우리 회원들에게 항상 마음을 비우고 욕심내지 말아야 한다고 당부한다.

건강관리는 어떻게 하는가?
=저는 새벽 6시면 집에서 나와 뛰다시피 걸어 50여 가정을 순회한다. 사실 6년 전에 유방암에 걸려 일산에 있는 국립 암센터에서 4년 반 동안 방사선 60일 항암치료를 받고 지금도 약을 복용하고 있다. 그러나 아파서 협회 일을 중단해 본적은 없다. 봉사에 미쳐 다니다보니, 어느새 암도 이겨낸 것 같다. 이심전심이라 했던가. 그래서 말기암 환자에게 더욱 신경을 쓰고 보살피고 있다.

앞으로 포부가 있다면?
=우리 부천시에는 아직도 발달. 자폐성 장애인들이 거주하는 시설이 부족한 현실이다. 부천에 수용할 시설이 없어 타시에 있는 시설로 보내어지는 사례가 있는데 가족과 떨어져 있는 아픔이 큰 것 같다. 이들을 평안하게 거주시킬 수 있는 재활원이나 요양원 등 시설을 운영해 보고 싶다. 다른 사람들은 내 나이에 직장을 은퇴하여 쉬고 있는데 저에게 쉼표는 없다. 에너지가 있는 한 봉사하며 살고 싶다. 그 꿈을 이루기 위해 계속 공부하며 뛰고 있다.

젊은 시절에는 어떤 일을 했는가?
=앞서 밝혔듯이 저의 20대 직업은 미싱사였다. 동대문에서 고 전태일과 함께 봉제 일을 하며 지냈다. 동대문 시장 옥상에서 주말마다 노동자들의 모임을 했으며, 최순영 전 부천시의원과 함께 일한 적이 있다. 평생 미싱사 일로도 생계는 걱정이 없었는데 허리가 아파 장애인이 된 뒤 그 일을 그만두었다.

경기복지신문 애독자에게 한 말씀 해달라.
=세상이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그 속에서 인터넷이 지배하고 있고, 세계의 뉴스가 속보로 전해지고 있지만 정작 유익하고 필요한 장애인계의 정보는 접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현장을 누비며 참된 소식을 전해주는 경기복지신문이 있어 소통이 되는 것을 감사하게 생각한다. 장애인들이 많이 보고 활용했으면 좋겠다.
오혜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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