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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석과 같은 도협회의 숨은 일꾼
김원종 경기도지체장애인협회 사무처장
끊임없는 도전과 혁신으로 도협회 발전 이끌어
시군 지회 간 격차 줄이는데 중점적 노력 필요
2017년 05월 08일 (월) 오혜정 기자 ggwelfare@naver.com

 
   

김원종 경기도지체장애인협회(이하 도협회) 사무처장은 1989년 서울시지체장애인협회 강동지회 총무업무를 시작으로 지금까지 지체장애인협화와 함께해 온 대한민국 장애계의 산 증인으로 통한다. 두 살 무렵 소아마비로 인해 장애인이 된 김 사무처장은 여유있는 온화한 미소로 도협회의 안살림을 도맡아하고 있다. 수원에 위치한 도협회 사무실에서 김 사무처장을 만나 그 동안의 활동과 인생이야기를 들어보았다.


-그동안 지체장애인협회에서 오랜 기간 봉사해왔다. 소감 한말씀 부탁드린다.
=장애인 당사자이다보니 이 정도는 지역사회에서 해야되지 않나 그런 생각을 많이했다. 거대한 물줄기를 한사람의 힘으로 바꿀 수 없지만 그 속에서 사회복지분야에서도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려면 준비를 해야되지 않을까해서 나름대로 노력을 많이 했다. 

-지체장애인협회와는 어떤 인연으로 지금까지 오게 되었는가?
=89년 서울시지체장애인협회 강동지회 사무국장으로 일하다가 중간에 개인사업을 하려고 협회를 떠났었다. 그 후 IMF때 회사를 정리하고 2000년에 광주로 내려와서 사무국장을 하다가 2002년 광주시지체장애인협회장으로 임명을 받았고, 2012년에 도 사무처장으로 발령받아 지금까지 일하고 있다. -광주지회에서 많은 일들을 한 것으로 알고 있다.
=광주지회에서 국내최초로 자동차 엔진에 들어가는 부품 만드는 공장을 운영했다. 장애인 18명과 일을 하다가 중증장애인들을 위한 일을 더 포괄적으로 하려던 차에 지회장 임기가 만료되어 못했다. 2002년도 당시만 해도 간이영수증을 써서 정산보고를 했는데 정식으로 체크카드를 써서 정산 보고를 했다. 몇 년 뒤 광주시에서 카드를 발급해서 행정업무를 했다. 회계를 정식으로 배우것은 아니었지만 예전에 사업을 해서 행정을 체계적으로 하는 방법은 알고 있었다. 처음에 도협회에서도 회장님께 말씀드리고 직원들과 업무 매뉴얼을 전국 최초로 만들었다. 그것이 31개 시군 행정 균일화를 만든 기초석이 되었다. 회장님께서는 대외적인 활동을 중점적으로 하시고 저는 내부적인 관리와 시군 지회 관리를 체계적으로 이뤄냈다고 생각한다.

-김기호 도협회장과 호흡이 잘 맞는 러닝메이트로 환상의 콤비라는 평가를 받고 있는데.
=김기호 도협회장님께서 전체적인 관리능력이 워낙 뛰어나 거기에 발맞춰 갔을 뿐이다. 제가 협회장님을 친형님처럼 생각하고 어떤 사안에 대해서 말씀하시면 그 의중을 파악해 알아듣고 직원들과 업무처리를 원활하게 잘 할 수 있도록 믿어주신 덕분으로 큰틀에서 협회가 잘 운영되고 있는 것 같다.

-도협회가 경기도는 물론 전국에서도 으뜸가는 단체가 된 비결은 무엇인가.
=전국에서 경기도협회가 예산이나 시군지회의 운영 및 회원간의 결집력에서 굉장히 잘 나가고 있다. 13개 지회에서 자립작업장을 운영하고 있는데 장애인들을 일자리 창출에 앞장서는 것은 물론이고 의정부시 같은 경우는 이번에 시설을 리모델링해서 깨끗한 환경에서 시작하도록 할 계획에 있다. 지장협이 시군 단위에서도 인원도 많고 브랜드가치가 높다. 시군의 장애인복지가 지체장애인협회를 위주로 해서 움직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협회의 성장 역시 김기호 협회장님이 오시면서 이루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시군지회 간의 격차를 줄여 상향 평준화 될 수 있도록 힘쓰셨다. 예를 들어 경기도에서 이동편의와 관련된 조례를 만들면 31개 시군에 적용할 수 있는 표준조례안을 만든다. 각 시군도 조례를 만들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보장구수리센터도 몇 개 시군만 도입을 했는데 지금은 예산을 받아서 차량을 지원받아 활발히 진행하고 있다. 협회장님은 시군지회의 활성화를 주된 목표로 삼고 있고 회원들을 최우선으로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각 시군지회장들도 열심히 하고 있다.
-앞으로의 협회가 더 도약하기 위한 비전은 무엇인가?
=기틀은 많이 잡혀있지만 북부지역이 열악한 상태이고 민원상담센터 활성화 방안을 도와 논의중이다. 북부쪽에 이동편의를 도협회에서만 하고 있는데 출장소 식으로 원활하게 진행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과제다.

   

-언제 장애를 입었나
=두살 쯤 소아마비로 인해 장애가 왔다. 경북 예천이 고향인데 아버님께서 서울에서 공부할 수 있도록 이사를 오셔서 초중고 일반학교에 다녔다. 같은 교회에 다니던 아가씨를 좋아해서 결혼을 승낙받으려고 장인어른께 인사를 드리러 갔는데 반대를 심하게 하셨다. 서울에 집이있었는데 다 정리해서 전라도 광주로 내려가시고 우리 집사람도 내려가는걸 제가 터미널에서 잡았다. 그 후로 부부의 연을 맺고 두 아들을 키우며 이제는 어엿한 직장인이 되었다.

-젊은시절 꿈도 많았을 것 같다.
=어린시절부터 그림 그리는데 소질이 있었는데 미대에 진학은 못했다. 다만 잘 할 수 있는 일과 연결된 자개농 도안 디자인을 했었는데 꽤 인정도 받고 재미도 있었다. 그래서 개인적으로 작은 도안 디자인 사무실을 차렸는데 잘 안됐다. 그 다음으로 한 일이 중학생 과외였는데 쏠쏠하니 괜찮아서 학원을 차렸는데 과외 금지령이 내려져서 문을 닫았다. 그 다음에 사업한다고 렌트카 대여해주는 사업을 하다가 갑자기 IMF가 터져서 또 안돼고 그래서 2002년 광주지회 사무국장을 하면서 쭉 지체와 인연을 맺게되었다.

-건강유지 비결은 무엇인가?
=양평에서 매주 파크골프를 즐기는데 재미있다. 그 외 시간에는 역사 공부를 10년 째 개인적으로 독학하고 있다. 책을 많이 보는 편인데 근대사에 관심이 많고 그 안에서 혜안도 얻는다.

-인생의 좌우명이 있다면.
=사람이 살면서 여러 가지 역경을 많이 겪는다. 제 좌우명은 ‘가장 오래 참는자가 가장 먼저 성취한다’이다. 참고 인내하는 사람이 성공한다고 생각한다.

-경기복지신문 독자분께 한말씀 부탁드린다.
=삶에서 성취하고 싶은 마음은 누구나 가지고 있다. 다만 환경이 되지 않으니까 어려움이 많은 것이다. 저희 단체들이 목소리를 더 내야할 부분인 것 같다. 소식지나 신문 등을 늘 접하셔서 정보를 습득하셨으면 한다. 내가 알아야 목소리를 낼 수 있다. 시대가 자꾸 변하다보니 환경도 바뀌게 된다. 독자님들 모두 적극적으로 알아가고 행동하는 용기를 가지시길 응원한다.
오혜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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