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경 소장은 3살 때 소아마비 앓아 53년을 걷지 못하고 휠체어 장애인으로 살아왔다. 어릴 적 친정아버지께서 “너는 할 수 있다. 뭐든지 도전하라”고 자신감을 심어 주었고 오늘 날 김 소장이 있기 까지 아버지의 영향이 가장 컸다고 한다.

 -삶에 대한, 일에 대한 열정이 대단한 것 같다.
=내 삶을 스스로 선택하고 후회 없이 전념해서 살아가는 스타일이다. 결혼도 마찬가지다. 삼육재활원(현재는 광주로 이전)에서 2살 연상의 소아마비 1급인 현재의 남편을 처음 만났다. 서로 사랑에 빠져 양가 집안의 반대를 무릅쓰고 결혼식도 올리기 전 26살 때 살림부터 차렸다. 나중에 친정아버지가 와 보시고 ”후회 안하겠느냐, 어려움을 잘 극복해야 한다. 사람은 됨됨이가 중요하다“고 격려해 주셨다.

-부부가 모두 중증장애인이라 생활에 어려움이 많았을 텐데.
=둘 집안 모두 가난해 남편이 모아 둔 100만원으로 서울 사당동에 신접살림을 차렸다. 당시 남편은 목발 집고 전자 관련 일반 직장을 다녔다. 첫 아들을 낳은 후 살던 사당동 집이 재개발을 하자 어쩔 수 없이 남편 친구들과 부천에서 월세 방을 구해야 했다. 저는 수동 휠체어를 타고, 남편은 목발을 집고 몇 군데 집을 보러 다녔지만 집주인이 물 뿌리고 문전 박대하기도 했다. 결국 월세 집을 구하지 못해 시댁에서 도움을 받아 석왕사 부근에 전세 집을 얻었다. 그 후 아들이 3살 때 통장님의 도움으로 춘의 영구 임대 아파트에 이사와 17년을 살았다.

 -가장 힘들었던 시절은 언제였는지.
=아들을 낳아 기르면서 어려움들이 많았다. 옆집 아주머니들이 그 몸에서 애가 어떻게 나왔어 할 때가 가장 당황했다. 아이를 8달 반 만에 출산했는데 태어난 직후 숨을 안 쉬어 급박한 상황까지 갔었다. 남편이 저를 데리고 병원 3층 성모마리아상 앞에서 기적이 일어나기를 기도했다. 산소부족으로 뇌성마비가 될 수도 있는 상황이었는데 병원에서 3일 동안 수동으로 산소를 공급하고 나서야 자력으로 호흡이 가능해졌다. 다행히 인큐베이터에 들어 간 후 무럭무럭 자랐다. 반지하방에서 살면서 일주일에 몇 번씩 병원을 다녔는데 아이 양육이 가장 힘들었던 것 같다.


-힘든 날들을 잘 이겨낸 보람이 클 것 같다.
=어렵게 낳아 기른 아들이 대학에서 도시건설을 전공한 뒤 현재는 춘의사회복지관에서 사회복지사로 근무하고 있다. 사회복지사로 사회 첫발을 내딛은 아들이‘자기로 인해 남들이 변화가 되어 잘 살아 갈 수 있는 부분이 있으면 만족한다’고 말할 때 정말 대견했다. 갖은 역경을 이겨내면서 힘든 날이 많았지만 어엿한 사회인으로 성장한 아들을 볼 때마다 대견스럽다. 주변의 고통 받는 장애인들에게 힘이 될 수 있도록 온 가족이 함께 노력해 나가겠다.
장상옥 기자

저작권자 © 경기복지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