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 복지 패러다임, 더 이상 시혜가 아니라 권리
법률에 근거한 장애인 권리옹호체계(P&A) 구축 필요

 

제435호 2014년 4월 21일자 9면에 나간 지면기사
지난 16일 성남시 한마음복지관 2층 대강당에서 성남시 장애인권리증진센터의 주관 하에 ‘장애인 권리옹호체계(P&A)’ 구축을 위한 세미나가 열렸다. 이진승 성남시 한마음복지관 사무국장의 사회로 세미나가 시작됐으며, 이재명 성남시장을 대신해 박상복 성남시 복지보건국장이 대독한 인사말을 통해 “장애인 인권을 위해서 노력하고 있지만 여전히 가야할 길이 멀다. 오늘 발제자 및 발표자 분들께서 생활 속에 녹아있는 장애인 차별 문제와 장애인 입장에서 고려하는 감수성 높은 소중한 의견들을 제시해 주시길 당부드린다. 장애인들이 차별의 한계를 넘어 평등으로 갈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라고 전했다.

또한, 안철수 새정치민주연합 공동대표가 축전을 보내왔다. 바로 이어진 세미나는 김종인 나사렛대학교 재활복지대학원장이 좌장을 맡았으며, 임성택 법무법인 지평 변호사가 발제자로, 조문순 장애인 인권침해예방센터장, 노승돈 경기도 장애인인권센터장, 박김영희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 사무국장, 이정주 성남시 장애인권리증진센터장이 발표자로 참석했다.

또한 내빈으로 법무법인 루츠알레 장배근 변호사, 분당경찰서 여성청소년계 유단희 과장, 성남시 장애인연합회 이수탁 회장 및 장애인관련 단체장들이 참석했으며, 사회복지 공무원, 사회복지시설 및 종사자 200여명이 자리를 가득 채웠다.

‘장애인도 당당한 권리의 주체’ 좌장을 맡은 김종인 원장은 모두발언을 통해 “장애인 권리옹호체계 구축이라는 주제는 의미가 깊다고 생각한다. 종래에는 주로 시혜적 복지를 중심으로 장애인 복지가 이루어졌다면, 이제는 시혜적 복지를 넘어서 장애인도 당당한 권리의 주체로서 복지를 선택하고 주도해 나가는 방향으로 장애인 정책의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다”며 의미를 부여했다.

 ‘P&A는 권리와 옹호’ 임성택 변호사는 연수차 미국에 있을 당시 청각장애를 갖고 있는 아들과 학교를 방문한 경험을 소개하며 ‘장애인 권리옹호체계(P&A)’에 대한 발제를 시작했다. 장애인 권리옹호체계 P&A는 보호와 옹호(Protection and Advocacy)로서 장애인의 권리를 보호하고 옹호하는 시스템이다. 임 변호사는 우선 미국의 P&A 사례를 소개하면서, 우리나라 상황에 알맞은 장애인 권리옹호체계 도입의 필요성 주장했다. 임 변호사는 “현재 우리나라의 국가인권위원회는 미국식 장애인 권리옹호체계가 담당하는 대부분의 것을 망라하고 있지만, 장애인인권센터와 같은 지방의 장애인 권리옹호체계는 법률이 아닌 조례에 근거를 두고 있어 조사권, 접근권, 긴급조치권에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다”고 말하며, 국가인권위원회와는 별도로 법률에 근거한 장애인 권리옹호체계를 만들 것을 주장했다. 또한 “권리옹호체계를 기존의 장애인복지법에 담기엔 장애인 권리옹호는 장애인복지 문제를 뛰어 넘는 것이다”라며 장애인 권리옹호에 관한 새로운 법률이나 특별법을 만들 것을 제안했다. 발제에 따르면 현재의 시스템은 공공기관의 협력 없이 장애인인권센터의 독자적인 조사권이나 접근권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임 변호사는 “장애인 권리옹호 기관들이 권한을 효과적으로 수행하기 위해선 장애인들의 기록 및 거주시설에 대한 광범위한 접근권을 가질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또한 “조사 이후 조치권에 있어서도 가해자로부터 피해자를 분리할 때 피해 당사자가 동의할 의사능력이 없는 경우도 있기 때문에 장애인 권리옹호기관이 응급조치권한을 갖고 응급조치를 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조사권과 조치권 깊이 공감’ 이어 조문순 센터장은 ‘눈물과 체념으로 만든 소금’이라는 제목 아래 염전 노예 장애인 사례를 중심으로 우리나라의 권리옹호체계 도입의 시급성을 발표했다. 염전 노예 장애인 사건에 대해 조 센터장은 “신의도 염전 사건은 열리지 않았던 판도라의 상자가 열린 듯해 역설적이지만 기뻤다”라며 발표를 시작했다. 조 센터장은 “염전으로 유입된 대부분은 제대로 된 임금을 받지 못했고, 심지어 당사자 중 1/4는 학대 및 폭행을 당했다”고 말했다. 또한 염전 노예 사건과 관련해 “발제의 내용 중 조사권과 조치권에 있어 깊이 공감한다”라고 말하며 임 변호사의 장애인 권리옹호체계 도입에 대한 주장에 동의했다.
조 센터장은 “염전주와 함께 거주하는 피해 장애인이 있어 들어가 조사하려 하면 주거침입죄로 고소당한다. 실제로 ‘원주 귀래 사랑의 집 사건’에서 열쇠를 따고 들어간 활동가가 주거침입죄로 고소당하기도 했다”며 현 시스템의 답답함을 토로했다.

 ‘활동가에게 조사권 필요’ 다음으로 노상돈 센터장은 H요양시설에서 발생한 성폭행과 노동력 착취 사건에 대해 발표했다. 노 센터장은 “제보를 통해 알게 된 불법거주 장애인들을 면담하고 임시 거처로 옮기는데 약 3개월의 시간이 걸렸다. 또한 성폭력 수사대에서 압수수색을 진행할 때에도 우리는 밖에서 대기할 수밖에 없었다”며, “H요양시설 사례를 통해 장애인 권리옹호체계의 필요성을 절감 한다”고 밝혔다. 노 센터장은 “H요양시설 사건처럼 핵심으로 접근하지 못하고 주변을 배회하다보면 3~4개월의 시간이 소요된다. 이러한 불필요한 시간을 줄이고 많은 일들을 효과적으로 수행하기 위해선 활동가들에게 조사 권한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상담대응 네트워크 도입 시급’ 박김영희 사무국장은 장애인 차별에 있어 장애인의 특성에 맞춰진 장애인 권리옹호체계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박김 사무국장은 “장애인 차별에 대응하는 기구는 인권위이지만 접근성이 떨어진다”며, “장애인의 특성에 따라 자신이 경험한 차별에 대해 진정서를 제출하기 어려울 때도 있다”고 말했다. 박김 사무국장은 컨테이너박스와 같은 비인간적인 환경에 기거하던 장애인을 빼오기 위해 노인전문기관의 협조를 받을 수밖에 없었던 사례와 전북 양봉원에서 비인간적인 노동 착취를 당해온 지적장애인 사례를 들며 “장애인 단체가 사건에 접근할 권한과 지역 상담대응 네트워크의 시급한 도입이 필요하다. 이는 더욱 강화된 장애인 권리옹호법률을 통하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일이다”라고 주장했다.

 ‘자기결정 주장’ 마지막으로 이정주 센터장은 ‘제도적 이념을 넘어 실천적 정착을 위한 한국형 장애인 권리옹호체계 구축제언’이라는 주제로 발표를 진행했다. 이 센터장은 “그동안의 장애인 복지는 시혜적이었다면, 이제부터의 장애인 복지는 권리적이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장애인 권리옹호체계는 장애인 스스로 자기결정하고 주장할 수 있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우리는 아예 바닥에 있는 권리를 끌어올리려는 것이 아니다”라며 장애인 권리옹호체계가 제도적인 이념이 아닌 장애인, 장애인 가족, 장애인 관련 종사자들의 권리 주장, 즉 실천임을 강조했다.

 이후 질의응답에서 세미나 참가자들의 질문이 이어졌다. 시흥시의 한 공무원은 조문순 센터장에게 “염전 노예 장애인에 대한 피해 대책 수립이 되어야 한다고 말하셨는데, 그것이 어떤 내용으로 구성돼야 한다고 생각하느냐”라는 질문을 했다. 이에 대해 조문순 센터장은 “민관이 효율적으로 협력하여 개인별 지원계획과 공식적인 복지안전망을 통해 복지 서비스의 제공이 시급한 장애인들을 구제해야 한다”라고 답했다.

 이어 장애인복지관에서 일하는 복지사의 “장애인 권리옹호체계는 조사권과 접근권이 핵심이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이것을 얻어내기 어려울 때 어떠한 방식으로 대처해 나갈 것인가”라는 질문에 임성택 변호사는 “조사를 방해하거나, 정당한 이유 없이 거부하거나 했을 시에 과태료 혹은 벌칙을 부과하는 방법으로 장애인 권리옹호체계의 실효성을 높일 수 있을 것이다”라고 답했다.

오혜정·박치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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