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성마비 1급, 하은이 태어나던 날(2)

아침 8시경 눈을 뜨자마자 나는 아내에게 전화를 했다. 전화벨이 한참 울리고서야 아내가 받았다. “어떻게 됐어? 몸은 괜찮아?” 아내는 새벽 3시에 칠삭둥이 하은이를 낳았다. 그것도 수술을 받지 않고 자연분만으로 낳았다. 신기하기만 했다.
나는 4살짜리 큰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고 2살 아기를 등에 매고 아내가 미처 챙겨가지 못한 수건이며 몇 가지 물건을 들고 병원으로 갔다. 서두른다고 택시를 탔는데 코끝이 시큰했다.
‘그 돈 조금 아껴서 뭐 한다고……. 그냥 택시 타고 다니지…….’ 나는 아내의 양수가 터진 것이 택시 때문인 양 힘껏 택시 문을 닫았다.
병원에는 이미 장모님이 와 계셨다. 장모님은 별말씀이 없었지만 핀잔이 들리는 듯 했다. ‘그러니까 내가 셋째 낳는다고 할 때부터 알아봤어. 뭐 하러 쓸데없이 자식 놈은 많이 낳는다는 거야?’
나는 둘째를 장모님께 맡겨두고 병실로 들어갔다. 아내는 울상이 되어 있었다. 고생했다는 말을 하기가 무섭게 아기의 상태에 대해 물어봤다. 태어나는 순간 딱 한 번 울음소리를 낸 하은이는 정확하게 28주 만에 1.04㎏으로 태어났다. 몸무게가 1.04㎏이라는 것이 전혀 실감나지 않았다.
내가 마트에서 자주 사다먹는 사이다가 1.5리터 즉 1.5㎏인데 하은이는 그보다도 약 500g이 적게 나간다. 그럼 도대체 얼마나 가볍다는 말이며 몸집은 또 얼마나 작다는 말인가.
아직 폐기능이 성숙하지 않은 하은이는 인큐베이터에 있었다. 신생아 중에서도 중환자에 속하는 하은이는 정해진 시간에만 면회가 가능했다.
도대체 어떤 아이가 하은인지 보기 위해 신발을 벗고 무균 가운과 마스크를 쓰고 중환자실로 들어갔다. 생각보다 많은 미숙아들이 생각보다 많은 인큐베이터에서 숨을 쉬고 있었다. 간호사는 이리저리 길을 가더니 한 인큐베이터 앞에서 섰고 거기서 숨 쉬는 하은이를 만났다. 몸이 시뻘건 하은이는 30㎝ 자보다 작아서 그저 옹크리고 있었다. 도저히 사람이라고 할 수 없을 정도로 작은 사람, 하은이. 머리는 물론, 손과 발, 몸통 전부가 인형보다도 작았다. 입 속으로 관이 삽입된 채 누워있는 하은이의 얼굴은 알 수 없는 고통으로 일그러져 있었다.(처음에는 그게 고통 때문인지도 몰랐다. 원래 미숙아들의 얼굴은 그렇게 일그러져 있는 줄만 알았다)
눈물이 핑 돌았다. 하은이를 허허벌판에 벌거둥이로 내던져둔 것만 같았다. 실제로 하은이는 그랬다. 온도와 습도가 일정하게 유지되며 균이 침입하지 못한다는 인큐베이터였지만 가녀린 몸은 벌거벗었고 온갖 의료기구가 가혹하게 그 몸을 감싸고 있었다.
인큐베이터 안에서 하은이가 이대로 죽는다 해도 병원은 아무 책임도 지지 않을 것이고 아내와 나 역시도 아무런 항변을 하지 못할 것이다. 그렇게 아내와 나는 자식 일찍 낳은 무기력한 죄인이 되었다.
며칠 뒤 미숙아 중환자실에서 아내와 나를 불렀다. 하은이를 잠깐 면회하고 자리에 앉는데 의사가 하은이의 상태에 대해 설명하며 입원서류에 사인할 것을 요구했다.
그 서류에 있었던 내용은 차마 끔찍한 것이었다. 지금 하은이는 위장관 성장이 더딘데다 입으로 빠는 힘이 약해 젖을 먹이지 못하고 튜브 또는 정맥주사를 통해 장기간 영양공급을 해줘야 한다. 특히 하은이의 뼈와 폐는 충분히 발달돼 있지 않기 때문에 치명적인 신생아 호흡곤란증후군을 겪을 위험이 크다. 동맥관이 늦게 닫히는 등 심장 이상으로 심부전과 폐부종, 폐출혈 등이 일어날 수도 있다.
뇌실 내 출혈 또는 두개골 내 출혈은 물론 뇌혈류 감소로 인한 백질연화증이 나타날 수도 있다. 이 병은 초기엔 별 다른 증상이 없다가 영유아기에 뇌성마비와 정신지체 증상을 유발한다. 게다가 인공호흡기 치료를 받을 경우 발육 과정의 망막혈관이 손상돼 ‘미숙아망막증’을 합병, 시력을 잃을 수도 있다.
의사는 이 서류를 우리 앞에 내놓고 눈을 말똥거렸다. 병원은 지금 우리 부부에게 이런 가능성에 동의하라고 한다. 과연 우리는 이 서류에 사인을 해야 하나.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했다. 하지만 이내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반대 가능성에 더 마음이 기울기 시작했다. “그래 설마 내 아이에게 이런 일이 생기겠어?” 우리는 애써 우리 아이에게는 그런 일이 생기지 않을 거라고 위로하며 서명을 하고 나왔다. “그래 그런 일은 없을 거야” 우리 부부는 아무런 말이 없었다.
원래 몸이 건강했던 아내는 일주일을 입원하고 퇴원했다. 그러나 하은이는 여전히 인큐베이터에 있었다. 우리는 집으로 돌아왔는데 하은이는 여전히 인큐베이터에 남아 혼자 외로운 싸움을 계속해야 한다. 아이들을 돌보고 직장을 다니느라 나는 이내 하은이를 잊었다. 면회도 정해진 날짜, 정해진 시간에만 가능했기 때문에 나는 아이를 낳은 것도 잊을 정도였다. 다만 아내가 틈틈이 하은이를 만나 나에게 소식을 전해주었다.
어느 토요일 오후 식구 모두 친구네 집에서 삼겹살 파티를 하고 있는데 병원에서 전화가 왔다. 다소 사무적인 그 의사는 나에게 하은이에 대해 말했다.
“아이에게 백질연화증이 생겼습니다” 우리는 그런 병을 알지도 못하고 들어본 적도 없다. “일주일 전에 뇌에 출혈이 생겼는데 저절로 없어졌거든요. 그런데 어제 생긴 것은 아직 없어지지 않고 계속 진행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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