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성마비 1급, 하은이 태어나던 날(1)

 

 

하은이가 태어나던 날을 잊을 수가 없다. 마지막 무더위가 남아있던 2008년 8월 마지막 날, 평소보다 일찍 퇴근한 나는 아내에게 전화를 걸었다.
“응, 아이들 데리고 문화센터에 갔다가 집 근처 놀이터에 왔어. 좀 있다 마트에 갈 거야”
“아니, 임신 7개월인 사람이 아이들 둘을 데리고 문화센터에 갔다 왔다는 거야? 힘들지도 않아?”
아내는 4살, 2살 아들 둘을 데리고 부천역 근처에 있는 문화센터에 갔다 왔단다. 뻔한 지방신문 기자 월급에 당시엔 자동차도 없었으니 아내는 7개월 만삭 몸을 이끌고 아이 둘을 데리고 버스를 타고 이 더위에 그 길을 다녀온 것이다.
나는 ‘참 체력도 대단한 사람이다’ 생각할 뿐 더 대꾸를 하지 못했다. 이제 셋째 아이가 태어나면 첫째, 둘째 아이에게 신경을 써주지 못 할 테니 그 전에라도 두 아이가 재미있게 놀 수 있도록 해 주고 싶다는 아내의 생각을 어떻게 탓할까? 두 아이를 순풍순풍 잘 낳았으니 셋째 아이도 별 문제 없겠거니 우리 부부는 그렇게 생각할 뿐이었다.
조금이라도 아내의 짐을 덜어주고 싶어 서둘러 집 근처 마트로 갔다. 그러나 버스에서 내려 이윽고 만난 아내의 얼굴은 그날 아침과 많이 달랐다.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오른 것이 장거리 달리기를 막 끝낸 사람 같았다.
“자기야, 얼굴이 많이 안 좋다. 그러게 내가 무리하지 말라고 했잖아”
“아니야, 아까는 힘들었는데 지금은 괜찮아. 필요한 물건 사서 얼른 들어가자”
하지만 물건을 산 뒤 집에 돌아온 아내는 좀 있다 병원에 가봐야겠다는 이상한 얘기를 했다.
“어제부터 소변이 조금씩 새는데 아무래도 병원에 다녀오는 게 좋겠어. 그러다 말겠지 했는데 계속 새는 게 좀 이상하네. 통증도 조금 있고…….”
원래 임신을 하고 달수가 차면 아기집이 방광을 압박하게 되니까 소변이 새는 일이 종종 있다는 아내의 말에 안심이 되었지만 걱정이 앞서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아내는 그 길로 첫째 아이를 낳았던 산부인과 병원으로 달려갔다. 시간이 오후 6시를 넘어 응급실로 가면서도 택시가 아닌 버스를 타고 가야겠다는 아내에게 나는 핀잔을 주었지만 아내가 떠난 뒤에는 입이 꾹 다물어졌다.
두 아이들을 데리고 근근이 놀고 있는데 아내에게 전화가 왔다.
“이 병원에서 소변 새는 걸 두 번 검사했는데 처음 검사에는 소변으로 나오고 두 번째는 양수로 나온다네. 양수일 가능성이 더 높다고 하니 일단 입원부터 하래”
아니 요즘 의술이 얼마나 뛰어난데 양수인지 소변인지 제대로 확인도 못한다는 말인가? 그 병원이 검사했다는 게 어이가 없었지만 일단 아내의 말을 따르기로 했다.
“입원을 할 거면 여기보다 더 큰 병원으로 가는게 좋겠어. 내가 집에 들러서 입원할 준비를 해갖고 다시 나갈게”
그 때까지도 우리는 상황의 심각성을 전혀 알아채지 못했다. 처음 검사를 한 병원에서는 소변인지, 양수인지 정확히 알지도 못하지, 아내는 소변 새는 거 외에는 별 이상이 없다고 하니 그런가 보다 했다.
아내는 다시 버스를 타고 집에 와서 자기가 입원할 준비를 다 해갖고 종합병원으로 출발했다. 같이 따라가고 싶은 생각도 있었지만 어린 아이 둘을 데리고 또 버스를 타고 따라갈 생각을 하니 그것이 오히려 아내에게 짐이 될 것 같아 참았다.
하지만 아내가 떠난 지 한 시간 뒤에 나는 다시 아내의 전화를 받았다. 상황은 심각했다.
“소변이 아니라 양수가 맞대. 양수가 터져서 계속 나오고 있었던 거야. 통증은 양수가 계속 빠져나가니까 태아가 견디지 못하고 나오려고 준비하는 거고…….”
전화를 받고 머리가 하얘졌다. ‘이제 임신 7개월인데 지금 태어나면 칠삭둥이가 아닌가. 하지만 요즘이 어떤 세상인가. 의술이 발달해 칠삭둥이도 대부분 죽지 않고 별 문제 없이 살려내는 세상이 아닌가’
별의별 생각이 머릿속에서 맴돌았다. 나는 당장이라도 병원으로 달려가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했다. 지금 아이들 둘을 데리고 병원에 간들 뭘 어떻게 할 수 있단 말인가. 나는 불안한 마음을 억누르며 그저 기다리기로 했다.
아내는 이른 출산을 피하기 위해 최대한 양수가 나오는 것을 억제하며 병원에서 며칠을 버텨보겠다고 했다. 양수가 터졌어도 세상에 나오는 것보다 엄마 뱃속이 더 낫다는 것이 아이러니했다.
불안한 마음을 간신히 억누르며 4살, 2살 아이들과 잠을 자는데 새벽 3시경 전화벨 소리에 잠이 깼다. 간호사가 다급한 목소리로 말했다. “지금 아기가 나올 것 같아요. 빨리 병원으로 오세요”
나는 아이들을 맡길 데가 없어 갈 수 없다고 말했다. 우리 부부는 셋째를 임신한 뒤부터 양가 부모님께 구박(?)을 받고 있었다. 그런데 거기다 칠삭둥이가 태어난다고 하면 무슨 말씀을 하실까? 나는 지금이라도 아이들을 장모님께 맡기고 병원으로 달려가야 한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셋째 아이는 이제 곧 태어날 텐데, 아내는 병원에서 혼자 사투를 벌이고 있고 나는 아이 둘을 데리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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