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에는 장애와 비장애의 구분 없죠”

시각장애인 바둑 세계챔피언으로 세계대회 8년 연속 우승
전용바둑판 개발 등 시각장애인 바둑 교육과 보급에 힘써

이지혜 기자
작년 11월 28일 서울 성동구 홍익동 바둑TV 스튜디오에서 한국과 일본 시각장애인의 특별한 대국이 펼쳐졌다. 시각장애인 세계챔피언인 한국의 송중택(51) 아마 6단과 일본의 가키시마 미쓰히루(34) 아마 3단이 점자바둑 대결을 벌인 것이다. 16개 시도대항 장애인 바둑대회 개최를 기념하기 위해 열린 이번 대결에서 송중택씨는 석점 접바둑을 두고 승리했다.

바둑 프로 기사들도 바둑판을 보지 않고 두라고 하면 100수 이상을 진행하기 어렵다고 하지만 송중택씨는 200수까지는 머릿속으로 어렵지 않게 그린다. 머릿속으로 계산하고 놓은 좌표의 위치까지 기억해야하기 때문에 엄청난 집중력이 필요하다. 헷갈릴 때는 손으로 바둑판을 한번 훑어 판세분석도 할 수 있다.

시각장애인이 쓰는 바둑판은 일반 바둑판과는 달리 가로와 세로줄이 튀어나오고, 바둑알 뒤에는 십자 모양으로 들어가 있어서 바둑판에 끼워 놓는 형식이다. 또 흑백을 구별하기 위해 검은 돌 위에는 볼록한 점이 튀어나와 있다.

전국장애인바둑협회 부회장을 맡고 있는 송중택씨는 “장애인이든 비장애인이든 남녀노소 누구나 다 어울릴 수 있는 것이 바둑”이라며, “더 많은 시각장애인들이 바둑을 즐길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바둑판 앞에서는 나도 비장애인”이라고 말하는 그를 부천의 한 기원에서 만났다.

-바둑은 언제부터 시작했나.

=17-18살 때 녹내장으로 시력을 점점 잃게 되었다. 시력이 나빠지고부터 학교에 진학하지 못하게 되어 가사를 돕거나 농사일도 했는데 그 당시 동네 어르신과 군인들이 바둑을 두는 것을 보고 처음 알게 되었다. 전맹이 된 21살 때는 바둑에 대해 몰랐다가 나이 서른 즈음 되어서 시각장애인 전용바둑판이 있는 것을 알게 되었다. 시각장애인 전용 바둑판은 국내에는 없고 일본에서 가져온 것인데, 내가 예전에 바둑 이야기를 했던 것을 기억한 아내가 선교사들이 일본에서 가져온 시각장애인 바둑판을 구입해서 생일날 선물로 주었다. 점자 바둑판을 만져본 순간 ‘아, 나도 할 수 있겠구나’하는 생각이 들었고, 바둑판이 생긴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바둑을 시작하게 된 것이다.

-눈으로 볼 수 없어 머리로 계산하면서 바둑을 둔다고 들었다.

=시각장애인 중에서 처음에 바둑을 접하는 사람은 그 점을 어렵게 생각하는데, 시간이 좀 오래 걸릴 뿐이지 바둑을 배우는 데 비장애인이나 장애인이나 별 차이는 없다고 생각한다. 다만 1대1로 지도해야 되고, 시간이 좀 더디다는 것 그리고 자료가 부족하다는 것이 어려울 뿐 바둑을 배우는 데에는 큰 무리는 없을 것이라 생각한다. 농아인이나 지체, 지적 장애인들 중 바둑을 두는 사람은 많은데, 시각장애인들은 별로 없다.

지금은 소리를 내어 두는 바둑도 하고 있는데, 안 만지고 보지도 않고 좌표를 불러주는 바둑을 하려고 하는 상대가 없어서 못하고 있다. 프로 기사들에게도 제안해보고 그랬는데 어렵다고 다들 안하려고 한다. 좌표바둑은 고수들만 가능하다. 16의 d, 4의 p 이런 식으로 알파벳과 숫자로 좌표를 읽어주면 되는 것이다. 바둑판을 만지고 접하다보면 길이 보이는데, 잘하기는 어려워도 배우기는 쉽다. 어느 정도 수준까지 올라가느냐는 노력여하에 따라 다르지만 일정한 시간을 갖고 한다면 실력은 더 향상될 수 있다.

-바둑의 매력은 무엇인가.

=시각장애인의 취미가 다양하지 못하는데 질 높은 여가활동을 할 수 있다는 것과 혼자만 즐기는 것이 아니라 남녀노소 누구나 같이 어울릴 수 있다는 것이 큰 매력이다. 시각장애인과 청각장애인이 함께 할 수 있는 것이 많지 않은데 바둑만큼은 함께 어울릴 수 있다. 이 기원에도 가끔 농아인이 와서 나와 함께 바둑을 두는데 수담(손으로 대화하는 것) 외에 말이 필요 없는 경기다.

-처음에 시행착오도 많이 겪었을 것 같다.

=90년도 처음에 바둑을 접했을 때는 판을 외우기도 힘들고, 숫자도 기억하기 힘들다보니까 한판 하는데 2~3시간씩 걸렸다. 그래서 상대방이 답답하다고 잘 안 두려고 했다. 그러다가 지금은 많이 빨라졌다. 경기에 나가면 한 시간 안에 끝내야하기 때문에 지금은 속도 문제는 전혀 걱정하지 않는다. 조훈현, 유창혁, 이창호 등 유명한 선수들과도 바둑을 둔 적도 있을 정도다.

-세계적인 대회에도 많이 참가했었는데.

=일본 오사카에서 열리는 세계 유일의 시각장애인 바둑대회가 있는데 8년 째 참가해서 한 번도 우승을 놓친 적이 없다. 보통 19줄판으로 경기를 하는데, 저변확대를 위해 참가자들을 대상으로 축소해서 9줄로 경기를 하기도 한다. 9줄은 잘 두는 사람들이 많아서 현재 4승 4패의 결과다.

경기 결과를 떠나 가장 기억에 남는 대회는 유러피언고페스티벌에 참가했을 때다. 매년 유렵을 순회하면서 열리는 대회인데, 2004년 폴란드 대회와 2006년 체코 대회에 참가했었다.

40-50개국에서 온 1,000여명의 참가자 중 장애인 참가자는 나 혼자뿐이었고, 그때 40위를 기록했었다.

대국이 끝나면 거리에 큰 바둑판을 깔아놓고 서로 다른 나라 사람들끼리도 대결을 펼치는데, 그때 만난 루마니아 학생들과 바둑을 두면서 어리지만 진지하게 바둑에 임하는 자세에  놀랐었다. 그때는 내가 한수 가르쳐줘야하는 입장이었는데 그게 6~7년 전이니까 지금은 상당한 기량을 가진 선수가 되어 나보다 더 앞서가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 대회는 보름동안 열리는데, 대부분 축제에 참가하기 위해 1년 휴가를 다 모아서 온다고 한다. 바둑을 잘하든 못하든 좋아하는 사람들이 함께 모여 즐길 수 있으니 더 좋았던 것 같다.

-시각장애인들에게 바둑을 전파하려는 노력을 많이 하고 계신다.

=2002년도에 일본에 가서 2~3번 정도 바둑경기를 가졌었는데 계속 우승을 하다보니까 일본의 프로 선수들이 다른 시각장애인들에게도 보급해 같이 하면 좋지 않겠냐는 말을 했다.

그 말에 공감해서 시각장애인들에게 바둑을 가르쳐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는데, 가르치려고 한다면 체계적으로, 제대로 된 방법으로 가르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해서 공부를 시작하게 되었다. 그래서 2004년에 명지대학교 바둑학과에 입학해서 4년 동안 공부하고 재작년에 졸업했다.

현재 서울맹학교에서 3년째 방과 후 활동으로 바둑을 가르치고 있고 장애인바둑협회가 인천에 있어 그곳을 찾아오는 장애인들에게 바둑 지도도 해주고 있다.

바둑을 가르치는 방법과 더불어 시각장애인용 바둑판 보급을 위한 연구도 하고 있다. 시각장애인용 바둑판은 국내에서 판매되지 않고 대부분 일본에서 만든 제품인데, 지금 쓰는 것은 한판을 두고 나면 바둑알을 하나씩 다 빼야하는데 잘 안 빠져서 빼기가 힘들다.

그래서 바둑판의 선이 올라가고 내려가는 것을 만들었다. 선이 내려가면 바둑알이 뜨게 되고 그 뒤 바둑알을 정리하는 바둑판이다. 사실 개발한지는 좀 됐는데 수요가 많지 않아서 판매는 못하고 있는데, 특허라도 먼저 내려고 한다. 복지관 같은 곳에 보급이 되면 바둑을 배우고 싶어 하는 시각장애인들도 자연스럽게 쓸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어렸을 때 시력을 잃어 어려운 점도 많았을 것 같다.

=17살에 시력도 나빠졌지만 경제력으로 어려워서 학교에 가지 못했다. 그때 병원도 제대로 가보지 못했었는데, 몇 년 뒤 완전히 실명하고 더 이상 볼 수 없다는 판정을 받았을 때 많이 방황하고 수면제 먹고 죽으려고도 했었다. 그러다 어떤 방송을 통해 서울맹학교을 알게 되고, 그곳을 찾아간 다음부터 같은 시각장애인 친구들과 어울리다보니 힘든 게 점점 없어지더라. 1988년 29살에 아내를 만났다. 아내는 강북구 수유동의 한빛맹학교를 다녔는데 함께 어울리다가 친해져서 지금까지 행복하게 같이 잘 살고 있다.

-자녀들도 바둑에 관심이 많다고 들었다.

=아이들이 어렸을 때부터 바둑을 배웠다. 내가 장애인이기 때문에 나이가 들면 아이들과 더 거리감이 생길 것 같아서 같이 어울릴 수 있는 것이 없을까 생각하다 바둑을 시켰다. 그러다보니 재능도 있는 것 같아서 둘 다 프로기사를 지망했는데, 딸은 고3이라 공부 때문에 아마 4~5단에서 그만두었고, 아들은 중3인데 거의 프로 입단 수준까지 되어서 프로 기사로 키워볼 생각이다.

-앞으로의 활동 계획에 대해 말씀해 달라.

=올해부터 전국체전에 시각장애인 정식종목으로 바둑이 채택됐다. 전국체전을 위해 선수 양성도 해야 하고, 바둑을 더 알려야하기 때문에 학교나 장애인 단체에 가서 강의도 할 계획이다. 지금은 서울맹학교에서만 바둑을 가르치고 있지만 올해는 더 많은 곳에서 바둑을 지도하게 될 것 같다. 또 앞으로 전국체전뿐만 아니라 장애인올림픽이나 아시안게임 같은 국제대회에서도 바둑이 정식 종목으로 빨리 채택이 되었으면 좋겠다. 개인적으로는 생계를 위해 올해 다시 사업을 시작하려고 하는데 잘 되었으면 좋겠다.

이지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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