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각장애인들이 희망으로 만든 수제화

청각장애인의 안정된 소득보장 위해 지난 해 3월 설립·운영
자체 브랜드 '아지오'개발해 신사화, 효도화 등 생산 및 판매

<미니인터뷰>

파주시장애인종합복지관(관장 유석영)은 청각장애인의 안정된 소득보장과 경제적 자립을 위해 명품 수제화 제조업체인 ‘구두만드는풍경’을 설립해서 운영하고 있다.

‘구두만드는풍경’은 청각장애인의 일자리 창출을 위해 한국장애인개발원의 신규사업특별지원을 받아 만든 장애인생산품 사업장으로 자체 브랜드 아지오(AGIO)를 개발하여 신사화 및 효도화, 단화 등의 생산 및 판매를 하고 있다. 아지오(AGIO)는 이탈리아어로 ‘편안한, 안락한’이라는 의미로, 편안하고 안락한 명품 수제화를 만들겠다는 의지가 담겨있다.

‘구두만드는풍경’에서는 작년 1월 4명의 청각장애인 근로자를 모집해 3개월의 훈련기간을 거쳐 3월 30일 오픈식을 갖고 일을 시작했으며, 5월에는 청각장애인 여성 근로자 2명을 더 추가해서 지금은 6명의 근로자와 40년 경력의 구두 기술자, 복지관에서 파견된 3명의 사회복지사가 함께 일하고 있다.

또 파주수화통역센터에서 매주 목요일마다 나와서 청각장애인 근로자들을 위해 통역 봉사를 해주고 있고, 수화통역사 최향덕(53)씨도 무료로 수화통역 자원봉사를 하고 있다.

청각장애인들은 말하고 듣지 못할 뿐 장애인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래서 그들은 서로 농아인이라고 부른다. 자기표현을 잘하고 고집이 있어서 타협이나 양보, 배려하는 부분에서 아쉬운 점이 있지만 그것은 그들의 잘못이 아니다.

사회에서 직장생활을 한 경험이 별로 없다보니까 직장생활에 대해 생각의 차이가 있다. 그래서 틀에 박힌 조직생활을 못하고 오해도 많다고 한다.

작년 11월부터 근로자들에게 구두 만드는 것을 가르쳐주고 있는 기술자 차승익(경력 40년, 58세)씨는 “알려주고 싶은 게 많은데 말이 안 통하니까 어려운 점도 있지만 다들 잘해내고 있다”면서 “보통 기술자가 되려면 3년 정도 걸리는데, 이 친구들도 5년 정도 배우면서 일하면 기술자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잘 배워서 자립해서 나가는 모습을 보고 싶다”고 말했다.

매장을 따로 가질 수 있는 형편이 아니기 때문에 평소 알고 지내던 유명인들에게 부탁을 해서 카탈로그를 만들었다. 아지오를 홍보하기 위해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 장관) 가수 겸 방송인 서유석씨, 성우 배한성씨, CBS 대기자 변상욱씨, 황진하 국회의원 등이 구두 모델로서 무료로 참여했다.

이들을 위해 판매를 위한 홍보와 영업을 도와주고 있는 유석영 관장은 “처음에는 신사화를 중심으로 제품 생산을 하다가 작년에 충남 공주시의 한 수녀원에서 수녀화를 단체 주문받아 샌들과 단화 각각 300족씩을 만들어 판매했는데, 편안하고 오래 신을 수 있는 신발이라는 좋은 평을 받았다.

또 아는 지인의 소개로 울산에 있는 한 치과 의사가 간호사들의 신발을 주문했는데, 신어보고 추가 주문이 들어오기도 했다”고 소개하며, “여자화는 모양도 다양하고 또 여자 고객의 구매성향도 까다롭기 때문에 만들지 않고 있었는데 수녀화와 간호화를 계기로 여자화도 만들게 되었다. 또 수녀화를 만든 기술로 노인들을 위한 효도화까지 개발해 좋은 반응을 얻고 있으며, 앞으로 경찰화 등 단체화를 활성화시켜 판로를 넓혀갈 것”이라고 밝혔다.

또 유 관장은 “1년 남짓 지났지만 아직까지 매출이 많은 편은 아니지만 돈을 벌고자 만든 회사가 아니라 청각장애인들의 경제적인 자립과 안정된 가정을 위해 지원하고자 시작한 일이기 때문에 괜찮다”며, “일하면서 구두 관련 창업을 원하는 청각장애인의 경우 지원도 아끼지 않을 계획”이라고 말했다.

구두만드는풍경은 파주시보호작업장 신청해 승인을 기다리고 있다. 파주시보호작업장으로 승인 결정이 되면 올해 상반기부터 1천만 원 정도 지원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인건비나 운영비에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지난 12월에 사회적 기업으로 인증되면서 우선구매도 가능해졌기 때문에 올해는 매출에도 좋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사회복지사 문은경(39)씨는 “다른 일반 회사의 구두는 중국에서 다 만들어서 오는 경우가 많은데 우리는 국내 가죽으로 부분 공정을 거쳐 만드는 등 작업장에서 모든 것이 이루어졌고, 장애인들의 희망으로 만든 구두이기 때문에 더 자부심이 있다”고 말했다.

구두만드는풍경의 수제화는 보통 18-20만 원 정도. 오픈 이래 15% 할인행사를 계속 진행하고 있어서 약 16만 5천 원에 구입할 수 있다. 효도화나 샌들 등 단화는 9만 원 정도 한다고 한다.

주문은 전화나 방문, 인터넷 카페를 통해 할 수 있으며 남성화는 245-280mm, 여성화는 215-250mm까지 가능하다. 어려운 이웃에게 구두를 선물할 경우 연말정산시 소득공제 혜택이 가능하며, 지속적으로 A/S도 받을 수 있다.

한편 파주시장애인종합 복지관에서는 자매회사 구두만드는풍경에서 구두 기술을 배우며 함께 일할 청각장애인 근로자를 꾸준히 모집하고 있다. 파주시에 살고 있지 않아도 출퇴근만 가능한 청각장애인이라면 누구나 가능하다.

* 문의 031)957-9580-1 http://cafe.daum.net/AGIO

이지혜 기자

<미니인터뷰>

유 석 영 파주시장애인종합복지관장

“‘아지오’를 신는 모든 이들의 성공을 기원합니다”

-‘구두 만드는 풍경’의 설립 계기가 무엇인가.
=1980~1990년대에 많은 농아인들이 구두 분야에서 일했었다. 그런데 IMF 이후 중국에 공장이 많이 생기고, 외국인 근로자를 쓰면서 그때 실직한 농아인들이 많다.

기술은 있지만 관련 일자리가 없어 어렵게 생활하는 모습을 접하고 청각장애인들의 자립과 안정된 소득을 보장하기 위해 ‘구두 만드는 풍경’을 만들게 되었다. 처음에는 모두가 반대했다.

2009년 7월 사업계획서를 만들어 사방을 뛰어다니면서 한국장애인개발원에 가서 예산 1억 원 정도를 지원해달라고 했다. 지원받은 돈으로 기계 구입 등 인프라를 구축해 작년 1월에 근로자를 뽑고 훈련과정을 거친 뒤 3월 30일에 문을 열게 되었다.

-작업장은 있는데, 매장이 없다. 판매는 어떻게 하고 있나.

=매장이 없다보니까 지역이나 장애인 관련 큰 행사가 열리면 그곳에 가서 판매를 한다. 자체 브랜드 AGIO가 만들어지고 나서 홍보를 위해 작년 9월에는 ‘구두데이’라고 해서 국회에 가서 구두를 팔기도 했다. 입소문이 가장 빠르고 좋은 마케팅이기 때문에 신어본 사람이 다시 또 구두를 구입하고, 다른 사람에게도 소개할 수 있는 방법을 택했다. 인터넷 카페도 개설했는데, 그곳에서 인터넷 주문도 받고 전화주문도 받는다. 이제는 온라인, 오프라인에 대한 판매전략 새롭게 수립해서 구두 시장에서 1위가 되고 전 국민이 아지오를 신는 그날까지 열심히 해볼 생각이다.

-시각장애인이면서 청각장애인 관련 사업에 더 관심을 가진 이유는 무엇인가.

=시각장애인은 누가 눈만 빌려주면 할 수 있는 것들이 많이 있다. 하지만 청각장애인은 소통의 문제로 하지 못하는 것들이 참 많다. 제대로 공부한 사람도 많지 않고 사회에 진출하는 빈도도 낮다. 능력이 뛰어난 사람들이 많은데, 그 기회를 잡지 못한 것이 안타까웠다. 노동집중력도 좋고 소통문제만 해결해주면 환경적응력도 뛰어나다. 능력이 없어서 사회에 진출을 못한다면 그건 다른 방법으로 지원을 해야겠지만 잘 할 수 있다면 길을 만들어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올해 희망하는 목표가 있다면.

=‘구두 만드는 풍경’의 경우 지난해는 매출보다는 손해가 많았다. 시작하는 단계였고 시행착오도 있었다. 하지만 매출을 조금씩 늘려나가고 있기 때문에 올해는 3억 정도 순이익을 목표로 하고 있는데 충분히 가능하리라고 본다. 잘 만드는 청각장애인들이 편안한 신발을 소비자들에게 제공을 해서 이 구두를 신는 사람이 모두 성공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복지관과 관련해서 우리 복지관은 복지관 중심으로 복지를 하지는 않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복지관은 방향을 제시하는 정도여야 하고 지역사회가 우선되고 장애인이 중심이 되는 복지를 하자는 것이다. 복지관에 굳이 오지 않아도 지역사회에서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을 우리가 가서 제시해주고 도와주는 복지를 꿈꾸고 있다.

그래서 직업을 새롭게 갖는다든가 자기 특성에 맞는 프로그램을 배우는 것 외에는 직접 찾아가는 복지를 하게끔 직원들에게도 그렇게 이야기하고 있다. 지역 특성에 맞게 파주 장애인들의 행복한 내일을 꿈꾸게 만드는 것이 우리들이 희망하는 목표이다.

이지혜 기자


이지혜 기자
안 윤 승씨 청각장애인 근로자

“구두 만들면서 미래에 대한 희망 생겨”

안윤승씨는 신사적인 외모만큼이나 평소에도 매너가 좋고, 과묵한 성격으로 힘든 일이 있어도 불평 한번 하지 않는 ‘구두 만드는 풍경’의 듬직한 맏형이다. 같은 청각장애를 가진 동료들과 함께 일하고 개인 사업장이 아닌 복지관 보호 안에 있는 작업장이기 때문에 편하게 일할 수 있어서 좋다는 그는 앞으로 오래도록 구두 만드는 기술을 배우면서 이곳에서 일하고 싶다고 한다.

-‘구두만드는풍경’에 오기 전에는 어떤 일을 했나.

=예전에 나무 조각하는 일을 하다가 IMF로 그만두고, 공사장 등 여러 곳에서 일을 했었는데 일이 점점 줄어들고, 급여도 너무 적어서 오래 일하지는 못했다. 그래서 안정적으로 근무할 수 있는 이곳에서 일하게 되어 기쁘게 생각한다.

-지금 본인이 맡고 있는 작업 분야는 무엇인가.

-사상이라고 해서 구두를 다 만들고 난 뒤, 광내고 반짝반짝 빛내게 하는 작업을 맡고 있다. 이곳에서 처음 구두 만드는 기술을 접했다. 2년 전에 빌딩에서 직원들 구두를 닦아주는 일을 해본 적은 있지만 만드는 작업이나 이런 것은 배우지 못했다. 처음에는 구두 만드는 일을 잘 몰랐기 때문에 그런 부분에서 어려운 점도 있었지만 기술자 선생님이 잘 가르쳐주어 지금은 일하기도 편하고 좋다. 다른 회사에서는 이렇게 기술을 알려주는 곳이 없었다.

-이곳에서 일하면서 가장 좋은 점은 무엇인가.

-우선 희망이 생겨서 좋다. 그리고 농아인들이 모여서 일을 하는 곳이 없는데, 일하는 동료들이 모두 농아인이니까 대화하기도 편하다. 다른 회사에서는 대화를 하고 싶어도 의사소통이 어려워서 농아인이라고 놀림이나 왕따를 많이 당했는데, 이곳은 동료들과 대화를 나눌 수 있어서 좋은 것 같다.

-청각장애는 언제부터 가지게 되었나.

=3살 때 열병을 앓으면서 농아인이 되었다. 학교를 다녔지만, 초등학교 6학년 때까지도 수화가 없어서 친구들과 대화하기 어려웠다. 24살 때 서울에 살았었는데 그때 처음 수화를 배우면서 지금까지 수화로 대화하고 있다. 현재 아내와 아들과 같이 살고 있는데, 가족을 잘 이끌어 가고 행복하게 살아가기 위해 좋은 남편, 아빠가 되려고 노력하고 있다.

-처음으로 작업한 구두가 완성되었을 때 어땠는지.

=무척 감격스러웠다. ‘그 구두가 제일 먼저 팔렸으면...’ 하는 생각도 들었다. 얼마 전에는 새해 선물로 회사에서 우리가 직접 만든 구두를 선물로 받았는데 좋았다. 앞으로도 이곳에서 구두 만드는 기술을 계속 배우면서 오래도록 일하고 싶은 마음뿐이다. 또 기회가 된다면 구두 수선하는 일을 한번 해보고 싶다.

이지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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